“하나님의 계시의 위대한 신비는 그분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또한 떠나심을 통해 우리와 친밀해지셨다는 것이다. 그분과 아주 친밀해지면 우리 안에 에수가 사신다는 고백이 가능해지고 또 그분을 우리의 양식과 음료라 칭하면서 우리 존재의 중심이 되신 그분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나 깊은 친밀함이 정말 그리스도의 부재 속에서 이루어진다. ”

— 헨리 나우웨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

“가끔 ‘충전기 신앙’을 갖고 있는 분들을 본다. 마치 예배를 통해 은혜를 충전하고 나면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만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만만해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어제까지는 제가 실패했지만, 오늘 예배를 통해 주신 은혜로 나가서 승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공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충전기 신앙으로 살지 못한다. 그저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강함과 승리로 살아가는 것이다.”

— 모든 성도는 이제 인대인이다.

“이 새로운 정체성의 근거는 우리가 뭔가를 성취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데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받으면 ‘나라는 존재의 자존감은 경쟁으로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저 받는 사랑으로 얻게 된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 우리도 바울처럼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고백할 수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모든 생명의 원천이신 그분에게서 받으면 거리감이나 두려움 없이 서로 함께 있을 수 있다. 탐심과 권력욕이 없는 이 새로운 정체성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고난 속에 아무 조건 없이 온전히 들어갈 수 있다.”

— 헨리 나우웬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

“외로움은 종종 적대 행위를 낳지만 자발적 고독은 손님 대접의 토양이다. 외로운 사람은 남의 호감과 사랑을 얻어 내려는 욕구에 사로잡힌 나머지 주위 환경의 많은 신호에 과민해지고, 그래서 자신을 밀어낸다고 생각되는 대상에게는 금새 적대감을 느낀다. 그러나 일단 마음과 삶의 중심을 찾고 홀로됨을 운명이 아니라 소명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남에게 자유를 줄 수 있다. 일단 완전히 채워지려는 욕심을 버리면 비어 있는 그대로 남을 대접할 수 있다. 일단 가난해지면 좋은 Host가 될 수 있다. 가난할수록 잘 베푼다는 것이 손님대접의 역설이다.”

— 헨리 나우웬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

“하나님의 신비로운 임재에 닿으려면 그분의 부재를 사무치게 느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만족을 얻으려는 욕구가 절박한 데다 하나님과 친밀해지려고 부단히 애쓰다 보니 어떻게든 자신의 영적 사건을 만들어 내려 한다. 조급해진 우리 문화 속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모습은 여간해서 보기 힘들어졌다…그분은 우리가 심리적으로 구분하는 이미와 아직 사이, 부재와 임재 사이, 떠남과 귀환 사이를 초월하신다. 기대감을 품고 인내로 기다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환상에서 서서히 벗어나 시편 기자처럼 기도할 수 있다.”

— 헨리 나우웬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

“새로워진 것은 우리가 많은 것, 많은 사람, 많은 사건을 더는 끝없는 염려의 원인으로 경험하지 않고 이제부터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에게 알리시는 다양하고도 풍요로운 방편으로 경험한다는 것이다.”

— 헨리 나우웬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

“사순절 기간에는 겨울과 봄이 서로 지배하려고 다툰다. 이 절기의 특별한 도움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간절히 구할 수 있다.”

— 헨리 나우웬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